1. 서론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펩타이드 결합으로 연결된 짧은 중합체로, 단백질의 기본 단위이자 생명 현상을 매개하는 핵심 분자이다[1–3]. 생체 내에서 펩타이드는 효소, 호르몬, 신호전달 분자 등으로 기능하며 세포 내외의 다양한 생리적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 이러한 이유로 펩타이드는 오랫동안 생명과학 연구의 중심에 있었으며, 단백질 화학, 분자생물학, 의약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21세기 들어 나노과학과 재료과학의 발전은 펩타이드 연구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 펩타이드는 단순히 생체 내 기능을 수행하는 분자에 그치지 않고, 자기조립(self-assembly)을 통해 나노입자, 나노섬유, 나노튜브, 나노리본, 시트, 하이드로겔 등 0차원에서 3차원에 이르는 계층적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4–6]. 이러한 자기조립 현상은 자연계 및 생명현상에서 관찰되는 보편적 현상으로 생체 내 단백질 접힘(folding)이나 아밀로이드 섬유 형성과 유사하지만, 보다 단순화된 시스템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기능성 나노소재 설계의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7–9].
펩타이드 기반 소재의 장점은 여러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첫째, 뛰어난 생체적합성을 바탕으로 임플란트, 피부 부착형 센서, 웨어러블 전자기기 등 사람과 직접 접촉하는 응용분야에 적합하다[10,11]. 둘째, 합성 과정의 단순성과 환경 친화성이다. 펩타이드는 비교적 간단한 화학적 또는 생물학적 합성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합성 과정에서 환경 부담이 적어 지속가능한 소재로서의 가치가 크다[12]. 셋째, 구조적·기능적 다양성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아미노산 서열 조합만으로도 다양한 자기조립 경로와 구조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어, 맞춤형 소재 설계가 가능하다[13–15]. 이러한 특성은 펩타이드가 단순한 생체분자를 넘어, 차세대 기능성 나노소재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펩타이드 자기조립 연구는 학제 간 융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화학, 물리학, 생물학, 재료공학, 의학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펩타이드 연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예로서, 화학적 합성을 통해 특정 서열을 설계하고, 물리학적 분석 기법으로 자기조립 과정을 규명하며, 재료공학적 접근으로 소자화 가능성을 탐구하고 가치를 검증하는 식이다. 이러한 다학제적 접근은 펩타이드 연구가 단순한 기초과학을 넘어 응용과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16].
그러나 펩타이드 기반 소재의 응용은 여전히 여러 기술적 장벽에 의해 제한된다. 우선, 대면적 제조의 어려움이 중요한 한계로 지적된다. 자기조립은 본질적으로 열역학적·동역학적 요인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하는 구조를 원하는 위치에 재현성 있게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17]. 또한 소자 수준에서의 집적 한계도 존재한다.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를 실제 전자소자나 광학 소자에 통합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제어와 집적화 기술이 필요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18].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조기술 개발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펩타이드 재료의 용액공정 용이성을 기반으로 나노/마이크로 패터닝, 3D 프린팅과 같은 제조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여 자기조립을 선택적으로 제어하고 원하는 형태로 집적화함으로서, 펩타이드 기반 소재를 실제 소자 수준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19–21]. 이러한 제조기술의 발전은 펩타이드 연구가 실험실 수준을 넘어 산업적 응용 단계로 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 리뷰에서는 펩타이드 기반 기능성 소재의 자기조립 원리와 구조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펩타이드 자기조립체의 물리적 특성 그리고 제조전략을 통한 차세대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2. 기능성 펩타이드 자기조립: 구조와 특성
자기조립(self-assembly) 현상은 펩타이드 기반 기능성 소재 연구의 출발점이자 핵심 과정으로, 수소결합, π–π stacking, 소수성 상호작용, 정전기적 인력, 반데르발스 힘 등 여러 비공유적 상호작용이 협동적으로 작용하여 고차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이다[22,23]. 주요 상호작용으로는 수소결합, π–π stacking, 소수성 상호작용, 정전기적 상호작용, 반데르발스 힘 등이 있으며, 이들의 상대적 기여도가 구조 선택성과 성장 방향을 결정한다. 첫째, 수소결합은 아미드기(N–H)가 수소공여체, 카보닐기(C=O)가 수소수용체로 작동하여 선형적 또는 2차원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기하학적 제약은 β-sheet의 평행·반 평행 배열이나 α-helix의 나선 안정성을 결정하고, 결과적으로 섬유의 축방향 증식과 결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6,24,25]. 둘째, 방향족 잔기들(페닐알라닌, 트립토판, 티로신 등)의 π–π stacking은 고리 중심 간 거리(centroid–centroid)가 대략 3.4–4.0 Å인 조건에서 유의미한 전자구름 중첩을 일으키며, 평행·오프셋·T-형 배치 등의 미세기하학적 차이는 쌓임 에너지와 전자 전이 행렬요소를 크게 바꾸어 전하 수송 경로의 효율과 밴드형성 가능성을 좌우한다; 특히 방향족 고리의 전자주게/전자받기 그룹 치환은 분자간 거리와 상호작용 에너지를 설계 가능한 파라미터로 제공한다[26–28]. 셋째, 정전기적 상호작용은 곁사슬의 이온화 상태에 의해 좌우되며, 서로 상보적인 전하 분포는 salt bridge를 형성하여 국부적 안정성을 크게 높인다; 반대로 전해질 농도의 증가는 Debye–Hückel 차폐 길이를 감소시켜 장거리 정전기적 상호작용을 약화시키므로 pH 및 이온강도의 변화는 구조 선택성, 핵형성 장벽, 그리고 집합체의 붕괴/재구성 거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29,30]. 넷째, 반데르발스 힘은 개별 접촉당 에너지가 작지만 넓은 표면 접촉과 다중 접촉의 누적으로 인해 층간 간격, 축방향 정렬의 미세조정, 그리고 최종 격자 치밀성에 기여하므로 특히 비극성 표면끼리의 정렬에서 최종 안정성을 제공한다[31]. 마지막으로, 소수성 상호작용은 용매 배제에 따른 엔트로피 구동력으로서 작동하여 소수성 곁사슬들이 집단적으로 물과의 접촉을 회피하려는 경향 때문에 일정 농도나 용매 조성에서 응집을 촉진하여 미셀·나노튜브·나노리본 같은 다른 형태의 구조체로 변환될 수 있다. 특히 소수성/친수성 그룹을 모두 포함하는 양친성 펩타이드의 경우에, 이러한 상호작용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며, 용매 극성, pH, 이온강도, 온도 등의 외부 조건 변화에 따라 미셀형, 나노튜브형, 나노리본형 등 다양한 위상학적 구조로의 불연속적 전환이 유도된다. 이는 곁사슬의 공간적 배열과 2차 구조 형성 경향이 집합체의 곡률 및 계면 에너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자기조립의 경로 선택성과 구조적 다양성을 결정짓는 핵심 인자로 작용한다[32–34].
이들 상호작용은 에너지 스케일(수 kJ·mol−1에서 수십 kJ·mol−1)과 기하학적 요구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아미노산 서열(방향족 함량·소수성 패턴·전하 분포), 말단 치환(예: 아세틸화·페닐화·기능성 그룹 도입), 그리고 공정 변수(용매 극성·온도·pH·이온강도·농도·교반·건조 속도)를 동시에 설계·조절함으로써 핵형성 에너지 장벽과 성장 속도, stacking 간격 및 쌓임 방향성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24,35]. 동역학적으로는 핵형성 단계가 속도 결정 인자로 작용하고, 중간 올리고머 및 가역적 결합 재배열을 거쳐 성장 단계가 진행되므로 공정 경로(용매 교환 속도, 전기장·원심력·표면 패턴 등 가외적 구동력)는 최종 구조의 길이·직경·결함 밀도·결정성에 큰 영향을 준다[36].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는 분자 설계(아미노산 서열, 말단 치환, 보호기)와 공정 변수(용매 조성, 농도, pH, 이온강도, 온도, 용매교환 속도 등)의 조합으로 1D, 2D, 3D 계층 구조를 유도할 수 있다[37]. 1D 구조(나노섬유·나노튜브)는 분자 축을 따라 반복되는 정렬에 의해 전하 이동의 이방성 및 분극을 제공하므로 전자소자·압전 소자용 활성 채널로 유리하다[4,29,37]. 2D 구조(시트·리본)는 평면 내 주기적 배열로 광자 밴드 형성 및 간섭에 의한 구조색·광학적 응답을 구현하기에 적합하다[25].
3D 네트워크(하이드로겔)는 다공성 구조와 높은 수분 보유능, 기계적 완충성을 제공하여 조직공학 지지체나 약물 전달 매트릭스로 활용된다[4]. 분자 수준에서는 방향족 함량·소수성 블록·전하 분포·말단의 작용기 등이 stacking 간격, 쌓임각, 수소결합 패턴을 결정하여 1D 대 2D 성향과 단위격자 크기를 규정한다[35,38].
공정 측면에서는 농도와 용매교환 속도가 핵형성 빈도와 성장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Kinetic product(빠른 성장으로 얻어지는 준안정상태 구조체) 또는 Thermodynamic product(열역학적으로 안정한 구조체) 등 서로 다른 형태의 구조체를 유도할 수 있다[36]. 또한 pH·이온강도는 곁사슬의 이온화 상태와 전기적 차폐를 변화시켜 salt bridge 형성 여부 및 집합체의 안정성을 바꾸며, 온도·용매 극성은 소수성 상호작용의 상대적 기여도를 조정하여 위상 전이를 촉진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27,36]. 분자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분자동역학(MD) 및 강화 표본추출 시뮬레이션은 핵형성 메커니즘, 올리고머 간 상호작용, stacking 간격의 에너지 지형을 양상화하여 설계 변수와 최종 계층구조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필수적이다[36].
최근 발전된 고해상도 영상·산란 기법(cryo-EM, TEM, AFM, SAXS/WAXS)과 분광학(FTIR, CD, UV–vis) 결합 연구는 분자 정렬, 층간 간격, 2차 구조 지시자 및 집합체 위상 정보를 제공하여 시뮬레이션 예측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데 활용되고 있다[24,37,39].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는 단순히 생체적 구조적 모티프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자적 특성을 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특히 방향족 아미노산 잔기(phenylalanine, tryptophan, tyrosine 등)가 형성하는 π–π 상호작용은 분자 간 전자구름의 부분적 중첩을 유도하여 전하의 이동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중첩이 주기적 배열로 조직되면 열 활성화된 전하 홉핑(hopping)이나 양자적 터널링(tunneling)의 두 가지 전하 수송 경로를 제공한다[28,35,40,41]. 두 메커니즘의 상대적 기여도는 분자간 stacking 간격, 정렬도(도메인 크기 및 결정성), 결함 밀도 및 전자전이 행렬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전하수송 관점에서 π–π 스태킹의 기하학적 특성이 핵심 결정인자이다. 분자 간 간극이 감소하고 전자중첩이 형성될수록 전이 행렬요소(transfer integral)가 증가하여 홉핑 활성화 에너지가 낮아지고, 따라서 온도 의존성 전기전도도는 보다 약한 Arrhenius 거동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stacking 간격이 증가하거나 구조적 불연속(결함, 도메인 경계)이 존재하면 전하의 국부화(localization)가 심화되어 이동도가 크게 저하된다. 이러한 상관성은 실험적 전기전도도 측정과 전자구조 계산(DFT, first-principles) 양쪽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었으며, 분자정렬과 전자적 특성 간의 정량적 연결을 시도한 연구들에서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27].
밴드구조 관점에서 보면, 규칙적 분자배열을 갖는 일부 펩타이드 나노튜브/나노섬유에 대해 수행된 전자구조 계산은 유효 밴드형성 및 수 eV 수준의 밴드갭이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밴드갭 크기와 밴드폭은 방향족 고리의 상대배열(평행 혹은 스태거드), 단위격자 길이, 분자 간 거리 및 분자 배향에 민감하며, 이상적 계산결과는 유한크기 효과·열진동·용매·결함을 고려하면 실험값과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일부 계산연구는 diphenylalanine(FF) 계열 나노튜브에서 방향족 고리의 배열이 밴드갭을 결정하는 주요 인자임을 보고하였고, 또 다른 연구들은 구조적 배향에 따라 전자 이동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전자구조 계산(DFT, ab initio methods)연구에 따르면, 방향족 고리의 배열에 따라 펩타이드 나노튜브는 약 2–3 eV 수준의 밴드갭을 가질 수 있음이 보고되었다[40]. 또한 Tao et al.에 따르면 방향족 cyclo-dipeptide를 자기조립 나노구조체가 크기에 따라 양자구속 효과로 인해 1.5-4.0 eV 범위의 밴드갭을 가질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42]. 이러한 결과는 펩타이드 자기조립체가 단순히 생체적합성을 지닌 나노소재를 넘어, 밴드갭 엔지니어링이 가능한 기능성 전자재료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는 분자적 수준의 비대칭성과 초분자적 정렬에서 비롯된 독특한 광학적 응답을 나타낸다. 이러한 응답은 자기조립 과정에서 형성되는 구조적 비등방성과 주기적 배열에 의해 강화된다. 대표적으로, 방향족 곁사슬의 π–π stacking, β-sheet의 적층, 나노튜브 및 리본 구조의 방향성 배열은 전자구름의 비등방적 분포를 유도하여 광학적 이방성(optical anisotropy)을 발현한다. 이로 인해 입사광의 편광 방향에 따라 흡수 및 발광 세기가 달라지는 선형 이색성(linear dichroism)이 관찰되며, 경우에 따라 나선형 배열이나 비대칭적 패킹으로 인해 원편광 이색성(circular dichroism, CD) 및 원편광 발광(circularly polarized luminescence, CPL)과 같은 카이랄 광학 응답이 나타난다[43–45].
더 나아가, 펩타이드 자기조립체가 일정한 주기성을 갖는 나노구조를 형성할 경우, 특정 파장의 빛이 전파되지 못하는 광자 밴드갭(photonic bandgap)이 발생한다. 이러한 밴드갭은 빛의 전파를 선택적으로 억제하거나 강화하여 특정 파장에서 반사 및 산란을 두드러지게 하며, 그 결과 전자적 전이와 무관하게 구조색(structural color)이 발현된다. 이 구조색은 관찰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각도 의존적 광학 특성을 보인다[46–48]. Arnon 등은 diphenylalanine(FF) 기반 나노튜브 필름에서, Xiong 등은 펩타이드–고분자 복합체에서 이러한 구조색 현상을 보고하였다[49,50]. 이러한 특성은 펩타이드 자기조립체가 광학 소자, 센서, 디스플레이용 기능성 소재로 응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는 전자적·광학적 특성뿐 아니라, 전기적 분극과 기계적 자극 간의 상호작용에서도 독특한 특성을 보인다. 압전 효과는 외부 기계적 변형이 전기적 분극으로 변환되거나, 반대로 전기장이 기계적 변형을 유도하는 현상으로, 결정의 중심대칭이 깨진(non-centrosymmetric) 구조에서만 가능하다. 펩타이드 사슬은 극성 곁사슬과 아미드 결합으로 인해 분자 쌍극자 모멘트를 가지며, 이들이 자기조립체 내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될 경우 거시적 분극이 형성된다. 육방정계 결정구조를 같는 방향족 펩타이드인 Diphenylalanine(FF) 나노튜브에서 유기물 중 강한 압전 응답이 보고되었으며, 이는 펩타이드 나노구조체가 유기 압전 소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51]. 또한 Diphenylalanine을 기반으로 분자구조를 설계하여 널리 사용되는 압전특성 무기물질인 PZT(lead zirconium titanate, d33=100 pC/N)에 필적하는 d33=73 pC/N 압전특성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52]. 이러한 특성은 바이오센서, 에너지 하베스팅, 나노발전기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제시한다.
반면에 강유전성은 외부 자극없어도 자발 분극(spontaneous polarization)을 가지며, 이 분극의 방향을 외부 전기장으로 가역적으로 전환(switching)할 수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모든 강유전체는 압전성을 가지지만, 모든 압전체가 강유전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펩타이드 자기조립체 성장시, 특정 파장의 빛에 노출된 구조체에서 강유전체의 전형적 특징인 전기적 이력 곡선(hysteresis loop)이 관찰된 바 있다[53]. 이러한 전기장 이력 특성은 펩타이드 기반 나노구조체가 단순한 압전 응답을 넘어, 비실리콘 메모리 소자, 데이터 저장 장치, 전기적 스위칭 소자로 응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 제조기술 전략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는 전하 수송, 광학적 이방성, 압전 효과 등 분자 구조 및 분자 간 상호작용으로 독창적인 물리·화학적 특성을 디자인 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특성은 차세대 기능성 소재로서의 응용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자기조립 현상은 본질적으로 열역학적·동역학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며, 원하는 구조를 원하는 위치에 재현성 있게 형성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제조 기술을 통한 성능 향상, 집적화 및 위치 제어, 그리고 구조 제어가 필수적이다. 최근 연구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공정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 주요 전략은 크게 성능 향상, 집적화 및 위치 제어, 그리고 구조 제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성능 향상 측면에서, 펩타이드와 다른 물질의 복합화는 전자/광전 및 광학적 응용에서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분자구조 디자인을 기본 바탕으로 다른 전도성 또는 광활성 소재와의 복합화를 통해 특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음이 다수의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Wang et al.은 펩타이드–은 나노입자 복합체를 개발함으로서 전하 수송 특성을 강화하여 압전 나노발전기의 출력 성능을 높였으며[54], 최근 보고된 연구에서는 Cu2O 광전극 위에 Cu-MOF를 성장시키고, 여기에 이중기능 펩타이드를 고정화함으로써 항간섭성과 고감도를 동시에 확보한 광전기화학적 단백질 바이오센서를 구현하였다. 이 시스템에서 펩타이드는 전극 표면과 안정적으로 결합하는 동시에 표적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인식하여, 실제 혈청 시료에서도 낮은 검출한계와 넓은 선형 범위를 달성하였다[55]. 이러한 접근은 펩타이드 자기조립체가 다양한 나노재료와의 복합화를 통해 고성능 바이오센서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복합체 전략과 더불어, 용매 조성이나 pH, 이온 강도와 같은 공정 조건을 정밀하게 조절하여 물리적 성질을 극대화 하는 접근 역시 보고 된 바 있다. Nguyen et al.은 용액 내에서 펩타이드 구조체 형성시 외부전기장을 가함으로서 펩타이드 구조체의 분극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고 이에 필적하는 17.9 pm/V을 달성하여 무기물 압전소재로 잘 알려진 ZnO를 상회하는 압전성능을 보고하였다[51]. 또한 펩타이드 형성 시 광자극을 활용하여 분극 방향이나 강유전적 거동을 유도하는 시도는 펩타이드 기반 소자의 응답을 동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54].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를 실제 기능성 소자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물리적 성질만 증대하는것이 아니라, 원하는 위치와 방향, 그리고 형태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제조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정밀제어는 단순한 미세구조 배열을 넘어, 소자의 전기적·광학적 응답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최근 연구들은 다양한 기술적 접근을 통해 펩타이드 기반 구조체의 집적화와 구조 제어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펩타이드 자기조립체가 실제 응용 가능한 소자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는 표면 기능화(surface functionalization)를 통한 배열 제어이다. Reches et al.은 기판 표면을 아민기나 카복실기로 화학적으로 처리하여 diphenylalanine(FF) 기반 펩타이드 나노튜브가 특정 영역에만 선택적으로 배열되도록 유도하여 전자소자 제작에 필요한 정밀한 패터닝을 구현하였다[56]. Wang et al.은 Cu(110) 및 Cu(100) 표면 위에서 펩타이드 사슬을 성장시킨 뒤 테레프탈산(terephthalic acid, TPA)을 분자적 연결체로 도입하여 펩타이드 사슬 간의 간격과 배열을 정밀하게 제어하여 분자수준의 정밀도를 획득할 수 있음을 발표하였다[57].
주사터널링현미경(STM) 분석 결과, TPA가 일종의 “분자 접착제” 역할을 하여 고립된 펩타이드 사슬들을 연결하면서도 전체 구조의 키랄리티는 유지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잉크젯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여 펩타이드 나노튜브와 나노스피어를 원하는 위치에 직접 인쇄함으로써, 대면적 기판 위에서의 정밀한 공간 제어 가능성을 입증하였다[58]. 이러한 연구들은 펩타이드 자기조립체가 단순히 무작위적으로 형성되는 구조물이 아니라, 소자 제작에 필요한 위치 선택적 배열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또 다른 접근은 광응답성 펩타이드(photoresponsive peptide)를 활용하는 것이다. Inabaet et al.은 광반응성 단위를 포함한 펩타이드가 자외선 조사에 의해 국소적으로 자기조립을 개시하도록 설계하여, 광리소그래피와 유사한 방식으로 펩타이드 구조체를 원하는 위치에 형성할 수 있음을 보고하였다[59].
더 나아가, 외부 전기장이나 광자극을 활용한 정렬 및 위상 제어는 펩타이드 자기조립체의 전기적·광학적 응답을 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20,60].
Arnon et al.은 마이크로플루이딕스 기술을 이용하여 채널 내에서 펩타이드 용액의 유량을 조절함으로서, 자기조립성장 속도를 제어함으로서 잘 정의된 높은 결정성의 펩타이드 자기조립 구조체를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61]. 이러한 접근은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를 미세유체 플랫폼과 결합하여, 칩 스케일에서의 정밀한 집적화를 가능하게 한다.
최근에는 3D 프린팅 기반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Yang et al.은 펩타이드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큰 용매를 이용함으로서 3차원 프린팅 과정에는 자기조립을 억제하고 프린팅 후 외부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함으로서, 자기조립을 유도하여 구조체 내의 균일한 압전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정밀한 구조 제어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18]. 또한 3차원 프린팅 시 자기조립의 동역학인 과포화도를 외부 습도조건 변화로 실시간으로 조절함으로서 결정성과 비정질성을 공간적·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spatioselective crystallinity control 개념을 도입하여, 동일한 구조체 내에서도 영역별로 상이한 물성을 부여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이를 통해 다중 수준의 위조 방지(anticounterfeiting) 라벨 제작에 응용 가능성을 제시하였다[62]. 나아가 Farsheed et al.은 펩타이드 하이드로겔을 3D 프린팅하여 주기적 격자 구조를 형성하면 특정 파장의 빛을 선택적으로 반사·투과하는 포토닉 크리스탈 필름을 제작할 수 있음을 보였다[63]. 이러한 연구들은 펩타이드 자기조립체가 단순한 나노구조체를 넘어, 프로그래밍 가능한 기능성 소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결론 및 전망
펩타이드 자기조립체는 단순한 생체 모티프의 재현을 넘어, 전하 수송, 광학적 이방성, 압전 효과 등 다양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능성 소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분자 간 상호작용과 이로 인한 비대칭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독창적 특성은 기존 무기 반도체나 합성 고분자 소재와 차별화되는 장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특성은 광전자 소자, 광소자, 에너지 하베스팅, 센서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첨단 제조기술전략을 개발함으로서 실제 소자 수준으로 구현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3D 프린팅은 펩타이드의 용액 공정성을 활용하여 포토닉 크리스탈, CPL 발광 소자 등 광학적 기능을 지닌 구조체 제작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나노패터닝은 광자 밴드갭 제어 및 광학 간섭 기반 센서 제작에 기여하였다. 또한 하이브리드 복합화 전략은 펩타이드–그래핀, 펩타이드–탄소나노튜브, 펩타이드–금속 산화물 복합체를 통해 전기적·광학적 성능을 강화하여 에너지 변환 및 저장 소자에 응용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제조전략을 바탕으로한 성능 향상, 집적화, 구조 제어는 펩타이드 기반 소자의 응용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첫째, 펩타이드 자기조립체의 장기적 구조 안정성 확보가 필요하다. 둘째, 고집적 회로를 만들기 위해서 고정밀도와 유도하고자 하는 펩타이드 자기조립체의 성질을 유지할 수 있는 대면적 제조 공정 기술개발이 요구된다. 셋째, 실제 소자 환경에서 반복적 동작에 따른 신뢰성 검증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한계는 펩타이드 소재가 실험실 수준을 넘어 산업적 응용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향후 연구는 (i) DFT 및 MD simulation 등 고전적 분자 시뮬레이션 결과를 머신러닝/LLM 기술 등 AI 기술과 통합하여 매크로 스케일에서의 자기조립 경로의 이해와 정밀 제어, (ii) 제조전략기술 개발을 통한 소자 집적화, (iii) 하이브리드 복합화를 통한 성능 향상, (iv) 실제 응용 환경에서의 안정성 및 신뢰성 검증 등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펩타이드 기반 자기조립체는 단순한 생체모방 소재를 넘어, 차세대 광전자, 에너지, 센서 분야의 핵심 재료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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